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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외환거래 역사 및 FX마진 국내 현황

FX마진거래의 역사

FX마진 외환거래 역사

인류의 ‘외환거래’를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세계 ‘ 외환거래 역사 ‘는 수백 년 전후할 수 있으므로 이 글에서는 FX마진거래 (이하 외환거래)의 역사에 대해서만 살펴보도록 하겠다.

달러의 역사와 HTS의 보급

그 전에 먼저… 외환거래의 중심이 되는 달러의 역사를 간단하게 짚고 넘어가자.

1차 세계대전 후 영국의 포함한 유럽 열강의 경제력은 약화되고 전쟁 특수를 배경으로 미국의 경제가 눈부시게 발전하면서 세계 기축통화는 파운드화에서 달러화로 바뀌게 되었다. 1944년에 이르러서는 금 1온스를 35달러로 고정시키고, 모든 통화의 가치는 달러에 고정시키는 금본위제에 입각한《브레튼 우즈 체제》가 시작되면서 세계 외환시장에는 고정환율제도가 도입된다.

하지만, 당시는 완벽하리라 생각했던 이 금융시스템도 30년을 못 버티고 또다시 무너지게 된다.

배트남 전쟁을 배경으로 한 대량의 통화 발행으로 더는 달러의 가치를 유지할 수 없게 된 미국은 1971년 《브레튼 우즈 체제》를 폐기하게 되고, 세계 외환시장은 다시금 ‘변동환율제’로 돌아간다. 이로써 풍부한 유동성과 변동성을 얻게 된 외환시장은 세계 경제의 급속한 발전과 함께 최대의 금융시장으로 성장하게 되었고 각국의 핫머니(투기자금)가 모여들면서 자연스럽게 합법적인 ‘국제 도박장’으로 변모해 갔다.

정부 중앙은행과 글로벌 투자 은행, 연기금, 큰손 헤지펀드 등 일부 기득권층만이 입장할 수 있었던 ‘스페셜 무대’ 위에서 FX 외환거래 역사의 기반이 만들어진 것이다.

한편, IT 통신기술의 급격한 발전은 HTS (홈트레이딩 시스템)의 보급으로 이어졌고, 21세기를 전후로 드디어 개인 투자자도 금융 파생상품 시장에 참여할 수 있게 된다.

그 중에서도, 주식과 같은 전통적인 투자방식의 취약점 (내부거래, 비 효율적 주문방식, 개미에게 불리한 공매도 시스템, 낮은 유동성 등) 을 커버할 수 있는 FX마진거래와 같은 파생상품이 대중화 되면서 ‘기울어진 운동장’ 의 경사는 점차 완만해지고 있다.

‘선물거래’로 보는 FX 외환거래 역사

‘유사해외통화선물거래’이기도 한 ‘FX마진거래’의 탄생 배경과 역사를 이해하려면,그 원형이 되는 ‘선물거래’에 대한 지식이 필요하므로 간단히 살펴보도록 하자.

선물거래의 특징,공매도,차액결제,증거금,레버리지

원조 파생상품 ‘선물거래’의 탄생

투자자들의 바이블 격인 캔들봉차트와 마찬가지로 선물거래 또한 옆나라 일본에서 탄생했다. 1730년 오오사카의 도지마(堂島)라는 지역에서 ‘장부상 쌀거래’ (帳合米取引) 시장이 공설되었는데, 여기에서  오늘날의 ‘차액결제 거래(CFD)’ 와 ‘공매도’라는 개념이 처음으로 도입되면서 증거금과 레버리지를 활용한 거래로 발전되게 된다.

그 후, 산업혁명을 거치며 팽창하는 주식시장과 더불어, 1848년에는 미국에도 공식 선물 거래소인 ‘시카고 상품거래소’가 설립된다.

그리고 우리가 사는 현 시대…1986년 영국에서는 자본주의 시장의 ‘빅뱅’이라 불리우는 대규모 금융개혁이 단행된다. 크고 작은 전쟁과 대공황을 거치면서 성숙해진 세계 금융시장의 중심에서 결정적인 패러다임 시프트가 일어나는 순간이다. 증권업무의 컴퓨터 전산화, 수수료 개정, 은행자본 투입 자유화, 마켓메이커 제도 도입 등의 변혁이 비슷한 시기에 금융업계 전반으로 확산되면서, FX 외환거래 역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게 된다.

‘CFD’를 알아야 외환거래 역사가 보인다

위와 같은 변화의 물결 속에서, 90년대 초반 영국에서는 선물거래에서 차용한 ‘차액결제’와 ‘증거금’, ‘양방향 수익구조’의 개념을 도입한 각종 CFD(contract for difference) 상품이 탄생한다. 주로 채권, 주식 주가지수, 금 시세 차트와 연동된 파생상품이다. 그리고 수년 후, 90년대 중반 미국에서는 이 개념을 외환거래에 도입한 ‘FX마진거래’가 탄생하게 된다. 

이러한 CFD 파생상품들은 선물거래와는 달리 수수료가 저렴하고 만기가 없으며 국경이 없는 장외시장 (점두거래) 에서 주로 이뤄지기 때문에 사실상 24시간 거래가 가능하다는 것이 특징이다. 즉, CFD의 역사가 곧 외환거래 역사 라고 말할 수 있겠다.

CFD

FX마진거래도 CFD 상품에 속하긴 하지만,
그 시장 규모가 압도적으로 거대한 이유로 현재는 이 범주에서 빠져나와 독립된 금융상품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즉, 오늘날의 CFD는 증거금 및 차액결재 시스템을 바탕으로 각국의 주가 지수나 금,오일 시세 등에 투자하는 ‘장외’거래 (점두거래=대고객거래=영업점거래)를 일컫는다.

참고로, 인구가 우리나라의 반 밖에 안되는 호주에서도 2004년 이후 적극적 규제 완화로 인해 CFD가 보급되기 시작했고, 그 인구는 약 4만 5천 명 (2015년 기준)에 달하는 규모로 성장했다. 영국에서도 런던증권거래소 주식 거래량의 약 40%가 CFD와 관련되어 있다고 하는데, 대한민국 기획재정부는 도대체 무슨 비전을 가지고 있는지 궁금하다.

국내에서도 2016년에 규제가 완화되어 5억원 이상의 투자금을 가진 개미라면 이 CFD 바닥에서 놀아 볼 수 있다고 하는데,  금감원는 5억원이 무슨 동네 강아지 이름이라도 되는 줄 아는감?

이처럼, 오늘날에는 각종 파생상품들의 매력이 극대화 되면서 FX마진거래 또한 대중화되기 시작했고, 세계 외환거래 역사는 다시 쓰여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1세기의 금융시장은 더 이상 ‘그들만의 리그’가 아닌 개미들의 ‘천국’ 이 되어가고 있다.

‘와타나베부인’의 등장과 일본의 외환거래 역사

아시아에서는 홍콩, 싱가폴을 거처 1998년에는 일본에 정식 도입되었으나, 도입 초기에는 불편한 전화 주문이 일반적이었고, 지금의 한국과 같은 고액의 증거금이 필요한 복잡한 금융상품으로 취급되었다.

그러던 와중에, 저금리 통화의 대명사였던 ‘엔화’를 매도해서 금리 차익을 올리는 ‘캐리트레이드’가 성행하면서, FX마진거래가 전 국민적인 각광을 받기 시작한다. ‘금융 문외한’이라 치부 되던 주부층까지 FX마진거래의 매력이 알려지고, 짬시간 투자활동만으로도 고수익을 올리는 주부와 회사원, 각종 탈세 사례들이 속출하면서 언론에 단골로 보도되기 시작한 것이다.

외환 FX마진거래 와타나베부인 (그 중에서도 2002년~ 2005년 사이에 FX로 대박나서 무려 4억 엔 (약 40억 원)이라는 세금을 탈세한 50대 주부가 유명하다)

이즈음, 일본의 외환거래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단어가 등장한다.

개인 투자자들이 세계 외환시장에 영향력을 행사할 정도의 규모로 성장하자, 기관투자자들도 이들의 존재를 주시하기 시작했고 ‘와타나베부인’ (또는 ‘기모노트레이더’) 이라는 단어가 일본인 개인 투자자를 뜻하는 대명사로 쓰여지기 시작한 것이다.

참고로, 해외 헤지펀드들이 일본 개미의 급소(대량 손절 매물대)를 노리는 기법을 ‘와타나베부인 사냥’이라고 한다.

국내 FX 외환거래 역사 및 현황

한국거래소(한국증권선물거래소)가 통합 출범되던 2005년, 드디어 대한민국에서도 선물거래법시행규칙이 개정되며 FX마진거래 가 합법화 되었고, 당시 업계의 주목도는 일본 못지 않았다.

2008년의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에는 주식‧채권 등의 수익률이 약해지고 한국의 기준금리 하락을 배경으로 ‘강달러’ 현상이 지속되면서 우리나라에서도 FX마진(외환증거금) 거래가 새로운 재테크 수단으로 급부상한 것이다.

하지만 머지않아 국내 외환거래 역사는 어둠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대한민국 외환거래 역사의 어두운 그림자

아무리 맛있는 음식이라도 급하게 많이 먹으면 탈이 나는 법.

급성장하던 우리나라의 외환시장에도 이윽고 각종 양아치 회사들이 등장하게 되었고, 단순한 투기꾼 마인드로 대박을 꿈꾸는 개인 투자자들이 넘쳐나면서,  장래 유망한 금융상품이었던 FX마진거래는 어느새 도박에 가까운 머니게임으로 전락하게 된다.

금융 파생상품에 대한 이해도가 낮은 일반 개미들이 그 위험성을 제대로 학습하지 못한 체 거대 시장에 뛰어든 결과는 참담했다.국내 선물사 전체, 약 6000 계좌의 90%에서 손실이 발생하면서 ‘FX마진 = 초 고위험 상품’이라는 인식이 굳어지게 된 것이다. (2009년 기준)

그러나 다행히도 그 후에는, 각종 언론 보도를 통해 많은 투자자들이 증거금 거래의 위험성을 알게 되었고, 적극적으로 학습하는 투자자가 늘어나면서 손실계좌의 비율은 매년 감소하고 있는 추세다. 2016년 KB증권의 1/4분기 보고에 따르면 36%까지 떨어졌다!! (즉, 64%의 계좌에서 이익 창출)

양아치 악덕 업자들의 만행

한편, 관련 규제법안의 부재로 사각지대에 놓인 FX마진거래 업계 안에서는 무허가 선물사들의 위법적 수익구조 (체결거부, 스프레드 및 슬리피지 조작 등), FX를 위장한 불법 유사수신행위(가짜 금융업), 해외 선물사들의 국내 무허가 온라인 영업 등이 성행하면서 난잡한 분위기가 조성되기 시작한다.

이렇게… 대한민국 외환거래 역사의 어두운 그림자는 점점 더 커져만 갔다.

금융당국의 규제로 절멸의 위기에 놓인 FX마진 트레이더 !

개미들의 손실이 절정을 이루던 2009년, 레버리지가 종전의 50배에서 20배로 하향조정 되면서, 많은 트레이더들이 다른 시장으로 갈아타기 시작했고, 2012년 4월 이메가 정부 말기에는 설마 하던 일이 현실로 일어난다.

‘증거금 상향과 거래위험 고지강화’ 등을 골자로 한 ‘FX마진 건전화 방안’이 시행되면서 레버리지가 10배로 축소되고 마진콜율은 기존의 30%에서 50%로 올라갔다. 즉, 거래 개시에 필요한 납입액(개시 증거금)이 5천 달러에서 1만 달러로 대폭 인상되었고, 강제청산의 기준이 되는 유지증거금도 3천 달러에서 5천 달러로 대폭 상향 조정된 것이다.

그 결과, FX마진거래의 매력도는 현격히 낮아지고 진입 장벽은 높아지면서, 수 많은 개미 투자자들이 국내 증권-선물사의 HTS를 버리고, 해외 또는 국내 불법업자의 시스템을 찾기 시작했다. 이 여파로, 영업을 포기하는 증권-선물사들이 속출하면서 2015년 국내 FX마진거래 시장의 규모는 전성기의 10분의 1 수준으로 축소되며 괴멸 상태에 빠지고 만다.

사실상 국내 FX 외환거래 역사의 종말을 초래하는 정부 규제였다.

투자실패-자살방지

국내 FX 외환거래 역사의 한 줄기 빛

여기까지 읽고 한숨만 내쉬는 분들이 계실지 모르나, 그래도 한때는 파생상품 거래규모 세계 1위를 차지했던 대한민국 금융시장의 잠재력을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 다행히도 최근에는, 미국,유럽 대비 저렴한 수수료 체계를 갖춘 일본의 선물사로부터 호가를 제공받는 증권-선물사들이 늘어나면서 서비스의 질이 개선될 조짐이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하나금융투자의 경우, 별도 수수료가 있긴 하지만 ‘달러-엔’의 스프레드가 0.5 핍 (유로-달러는 0.6 핍)까지 내려갔고, 다른 선물사들도 1.5핍 수준까지 내려왔다. 아직도 일본과 비교하면 갈 길은 멀었지만, 이 정도 수준이면 스윙 트레이딩뿐만 아니라 데이 트레이딩이나 스켈핑(초단타)으로도 충분히 수익을 올릴 수 있는 레벨이다.

일본 역시 10년 전에는 지금의 한국과 비슷한 상황이었기에, 우리나라도 규제가 완화되고 업체 간의 경쟁이 본격화 된다면, 서비스 품질은 일취월장 할 것이다.

‘보너스 증거금’ 이라는 눈 돌아가는 팬 서비스에 고퀄 HTS로 무장한 미국이나 유럽의 선물사들에 비교하면 아직은 초라한 우리의 시스템이긴 하지만, 스프레드만 보자면, 국내에서 영업 중인 해외 선물사들과의 차이를 이미 극복한 상황이다.

굳이 불법성과 위험을 감수해 가며서 해외업자를 이용할 필요성이 점차 줄어들고 있기에, 앞으로는 어두운 그림자를 벗어내고 FX 외환거래 역사의 희망찬 내일을 지켜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