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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버’ 로 30대에 2번 망한 마진PD 신상공개

유튜버-마진PD-신상공개-자시소개

이 블로그 사이트 (개미FX) 를 정식으로 오픈한 지도 벌써 2달이 다 되어가는데, 그러고보니 아직도 운영자 (필자) 의 소개글을 제대로 올리지 않았다.

다음 달부터 본격적으로 운영되는 《개미FX 유튜버 채널》 개설에 앞서, 오늘은 약간의 사진과 함께 그동안의 인생을 큰 틀에서 정리해 보려 한다.

마흔살에 시작하는 유튜버 인생

마흔살-유튜버-생존법

얼핏 보면 흔한 책 제목처럼 느껴질 수도 있는 ‘마흔살에 시작하는 유튜버 인생’.

여기에서 중요한 단어는, ‘유튜버’ 도 ‘공략법’도 아닌 ‘마흔살’이라는 세 글자다.

단순히 ‘유튜버 되는 법’ 등의 키워드로 구글링 하면 수 많은 정보들이 쏟아지지만, 마흔살이 넘어 유튜브라는 ‘신세계’에서 수익을 올리기란 결코 쉽지 않다.

내 나이가 작년 여름, 정확히 만으로 40세가 되었다.

실제로  지금에 와서야 ‘불혹-不惑’이란 말의 진정한 의미를 제대로 알게 되었고, 우리 인간과 인생의 오묘함에 연일 감탄을 하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요즘이다.

하지만 이 나이쯤 되면, ‘실패’라는 단어가 점점 두려워지기 시작하는 시기이기 때문에, 뭔가 새로운 장르에 도전하는 것 자체가 과감한 ‘투자’이기도 하다. 그래서 적지 않은 용기가 필요하고, 설사 시작했다 하더라도 그 진행 속도는 생각보다 더디다.

게다가 외모조차도 이미 꽃다운 광채를 잃어버렸기에, 같은 스킬을 가진 20대 유튜버와 경쟁하게 되면 당연히 질 수 밖에 없는 구조다.

과거 유튜브 채널 운영사례와 실패요인 분석

유튜버로-망한-3가지-이유

하지만 사실은…
나는 과거에 2번이나, ‘유튜버’ 로 망해본 적이 있다.

반면, 투자자 (외환 트레이더) 로서는 3번의 큰 실패 후에 이제야 자리를 잡았는데, 유튜버 시도 또한 ‘한번 더 망할 수도 있겠구나’ 라고 생각하면 나도모르게 소름이 돋는다.

단, 이제는 《개미FX》라는 든든한 ‘본거지’가 있기에 더는 무서울 게 없다.

그래서 이번이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딱 한번만 더 유튜버 데뷔에 도전해 보려 한다. 딱딱한 블로그 텍스트와는 달리, 유튜브 동영상에서는 평상 시 대화하듯 편하게 운영해 보려고 하니 많은 댓글 참여 부탁한다.

참고로, 처참했던 2번의 실패 사례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실패 사례 ➊

  • 운영시기: 2009년~2011년 
  • 카테고리: K-POP 번역,낭독
  • 구독자수:1,836명

실패 사례 ❷

  • 운영시기: 2012년
  • 카테고리: 한류미녀 (또는 개성파 남녀) 인터뷰
  • 구독자수:172명

실패요인은 두번 다 비슷한데, 크게 3가지로 뽑아보면 다음과 같다.

  1. 비 규칙적인 업로드와 구성력 부족
  2. 시청자와의 커뮤니케이션 부재 (일방적인 정보 발신)
  3. 비쥬류 카테고리에 몰빵한 점 (아무리 한류붐이 일어나도 일본에서 K-POP이 주류가 된 적은 없다)

하지만 이번에는 일본이 아닌 우리나라 대한민국에서 모국어로 도전하는 첫 시도이기에, 20대 때 곧잘 느끼던 ‘근거 없는 자신감’이 다시금 솟아 오르는 느낌이다.

이번에는 위와 같은 실패 요인을 원천봉쇄하는 차원에서라도, 카데고리 이슈를 다음 4가지로 정하고,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대중성이 있는 동영상도 자주 올려볼 생각이니 ‘한물 간 아재’ 취급 하지 말고 좋게 봐주셨으면 한다.

유튜버 데뷔로 뒤돌아 보는 40년 인생

서두가 무지하게 길어졌는데…지금 부터 시작하는 ‘카데고리 설정동기’를 보시면, 내가 지금까지 뭘 해 왔고 어떤 부류의 사람인지 대충은 짐작이 갈 것이다.

당연한 얘기지만, 일단 유튜버로 성공하기 위해서는, ‘질리지 않는 전문성’ 또는 ‘차별화된 매력’ 아니면 ‘나만의 똘끼’라도 있어야 한다.

자신은 이 중에 어느 항목에도 해당되지 않는 그저 평범한 회사원 이라면, 큰맘 먹고 유튜브를 시작해 봤자 시간낭비로 끝날 공산이 크다.

나 역시 결코 다른 사람보다 큰 매력을 가지고 있지도 않으며, 연예인 같은 ‘똘기’도 없기에 결국은 ‘질리지 않는 전문성’으로 구독자들을 한명 한명 늘려나갈 생각이다.

마진PD 유튜브 채널의 4가지 전문분야

개미FX-유튜브-4대이슈-카테고리

나는 유튜브에서 말하는 채널 카테고리를 ‘전문분야’라고 바꿔 말하곤 하는데, 나의 경우 다음 4가지가 그 전문분야에 해당한다. 따라서 앞으로 이 장르들을 질리지 않게 손질해서 각각의 동영상으로 하나하나 승화시켜 나가려고 한다.

금융투자
개미FX의 무료리딩 게시글을 동영상으로 풀어내는 콘텐츠로, 아무래도 이 카테고리가 마진PD 유튜브 채널의 중심이 되지 않을까 한다.

비록 은행 딜러나 애널리스트 같은 경력은 없지만, FX마진 외환거래 선진국 (일본) 에서 10년이 넘는 세월동안 부업으로 차근차근 쌓아온 나만의 노하우가 있기에 동영상으로도 충분한 가치를 만들어 낼 수 있으리라 여겨진다.

일본문화
10대 때 일본으로 건너가서 군대도 가지 않고 20년 이상 살다 온 한국인이 유튜버 중에 몇 명이나 있을까?

물론 이게 자랑거리는 아니지만, 그 희소가치를 잘 살린다면, 일반인 시청자들이 재미있어할 스토리로 엮어볼 소재거리는 얼마든지 있다. 조금 자극적인 주제로 예를 들자면…‘일본의 일반인 여자와 가장 많이 해본 한국남자의 리얼고백’ (AV배우, 연예인 제외) 등등.

구글크롬
21세기는 그야말로 바야흐로 ‘인터넷 사회’다. 광(光)적인 힘과 고도의 IT기술로 연결된 이 그물망 사회의 핵심은, 뭐니뭐니해도 정보의’검색’과 발견한 정보의 효율적인 ‘공유’다.

그리고 이 두가지 행위를 할 때, 우리가 사용하는 것이 ‘브라우저’라는 도구다.
그런데…이토록 중요한 ‘인터넷 사회’의 핵심 도구임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국내에는 마소의 ‘Internet Explorer’나 ‘Edge’같은 깡통 브라우저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많다.

개인적으로는 ‘불여우'(Firefox) 를 거쳐 ‘구글 크롬’ 을 런칭 초기(2008년) 때 부터 오타꾸 수준으로 사용해 왔기에 그동안 수 많은 노하우가 쌓여왔는데, 이 중에는 우리나라 인터넷 상에서는 검색되지 않는 정보들도 꽤 있다.

요새는 국내의 일반 대중들한테도 구글검색과 ‘크롬 브라우저’ 의 편리함이 많이 알려진 것 같으니, 이러한 정보들을 화면녹화 동영상으로 조금씩 공개해 보려 한다.

연예가쉽 (연예인 스캔들,범죄,비리 등)
마음 바로 잡고 전업투자가로 활동하고 있는 지금의 나를 보면 상상하기 힘들지 모르지만, 사실 나에게는 ‘일본의 대형기획사 (상장기업) 신입사원 공채에 최초로 합격한 한국인’ 이라는 타이틀도 있다.

이 역시 보통 일반인들은 경험해 볼 수 없는 캐리어이므로, 이번 버닝썬 게이트와 같은 스캔들이나, 재미난 연예관련 이슈가 생길 때는 당시의 경험을 떠올려가며 대차게 비평해 보려 한다.

마진PD의 자기소개서 (처음이자 마지막 버전)

마흔살-마진PD-자기소개서-유튜브

BoA와 동방신기를 키워낸 ‘에이벡스’ (AVEX) 란 어떤 회사?

위에서 말한 일본의 대형기획사의 이름은 ‘에이벡스’ (AVEX) 라고 한다. ‘엔터사’라고 해도 종업원 수는 약 1,500명에, 연매출 1조 5천억 원이 넘는 엄연한 대기업이다.

2010년에는 동방신기 사태의 여파로 인해 SM엔터의 지분 16.91%를 매각해 버렸지만, 이 회사가 있었기에 이수만 선생님이 재기할 수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본최대-대형연예기획사-에이백스-AVEX

2011년 일본의 유명 취직정보 사이트(mynavi)가 발표한 취직 선호 기업랭킹에는, 지상파 방송국이나 우체국, 전화국(NTT) , 국적기(JAL) 항공사보다도 높은 23위에 랭크되었다.

일본기업-인기랭킹-순위-선호도

2011년도 일본 대학생 취직기업 인기랭킹 조사결과 (일본어 원문)

국내에도 많이 알려진 미쓰비시, 미쯔이 그룹, 산토리, 반다이 같은 대기업보다도 높은 인기도다. 한국에서는 일본에서 BoA와 동방신기를 키워낸 회사로 더 많이 알려져 있는데, 이 내용도 시작하면 좀 길어질 것 같으니 다음 기회에 다루기로 하겠다.

극과 극을 치달았던 ‘쓰레기’ 10대 시절

참고로, 사회생활 입문 당시 나의 입사 동기들은 대부분 와세다, 게이오와 같은 일류대학 출신이었고 나 또한 그리 나쁜 대학 출신은 아니다.
(일본에서는 한 도에 하나밖에 없는 지방의 ‘국립대학’을 웬만한 도쿄의 ‘사립대학’보다 좋게 평가하는 관행이 있다. 참고로 나는 관동지방의 모 국립대)

그런데, ‘쌍놈’ 태생의 내가 어떻게 이런 엘리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었을까?
여기에도 특별한 비법이 있긴한데…그건 다음번 글에서 다루기로 하고 오늘은 마지막으로 나의 방탕했던 ’10대’를 간단히 요약해 보겠다.

자랑 같이 들릴지도 모르지만 스토리 전개에 필요한 ‘팩트’이기도 하니, 그러려니 하고 읽어주길 바란다. (물론 두번 다시 이런 글을 쓸 일은 없을 것이다)

팔방미인 우량 초등학생이 1년만에 ‘비행 청소년’으로

마진PD-팔방미인-초딩-중딩-고딩시절

초등학교 시절의 나는 ‘벼락치기’ 공부만으로 상위권 성적을 유지하던 똘똘한 꼬마였다. 동시에, 방과 후에는 동네 놀이터로 직행해서 야구, 축구, 구슬치기, 딱지게임 따위에 미쳐 살던 무지하게 외향적인 아이이기도 했다.

게다가 싸움까지 잘했으니, 학교에서는 선생님 다음으로 추앙 받던 존재였다. 실제로 1989년에는 경동국민학교 (성수동 소재) 6학년 8반의 회장으로, 반장 위에 군림하는 최상위 임원이었다.

역사에 ‘만약’이란 단어를 적용할 수는 없지만, 만약 그대로 잘 자라줬다면, 누가 보더라도 훌륭하고 성실한 청년으로 성장했을 텐데… 왜 나는 삐딱한 사춘기 소년시절을 방황하며 그 후 15년이라는 긴 세월을 도박과 여자에 물들어 허비해 버린 것일까?

(물론, 대학 진학과 취직이라는 최소한의 생존행위는 가까스로 성공하긴 했지만, 운이 나빴다면 그조차도 실패할 수 있었다)

그 이유는… ‘이혼가정’이라는 통제되지 않는 가정환경 아래서, 양아치 일진 친구들과 같이 놀아나며 온갖 비행을 일삼아버린 ‘어긋난 호기심’에서 찾아볼 수 있다.

아빠의 사업실패와 가정 파탄

아버지의 끊이지 않는 사업 실패에 질려버린 엄마는 내가 초등학교를 채 졸업하기도 전에 일본으로 도망을 갔고, 결국 예체능계 학교에 진학하고 싶었던 나의 어린 ‘꿈’도 산산조각이 났다.

아버지-사업실패-가정파탄

인생에서 가장 감수성이 예민하고 호기심이 많았던 그 시절, 난생 처음으로 맛본 깊은 좌절감 뒤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누군가의 위로가 아닌 공장지대 (당시의 성수동) 양아치 형들의 ‘유혹’이었다.

그렇게 한번 술과 담배를 배우게 되자, 학교에서도 자연스럽게 ‘일진 양아치’들과 어울리게 되었고, 당시 그들의 놀이문화였던 당구와 도박 (화투, 트럼프 카드) 에 중독되며 ‘방탕소년단’의 일원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그 당시는 대마초나 물뽕같은 마약류를 구하기가 힘든 시절이었기에 본드나 가스 흡입에 빠지는 아이들도 많았는데 다행히 내 입맛에는 맛지 않았다. 패싸움은 기본으로, 뒤통수 땜빵을 훈장으로 여기던 시절이었지만, 그래도 두뇌까지 썩지는 않았기에 가까스로 회생할 수 있었다.)

한국이여 잘있거라! 일본으로 간 고삐리의 인생은?

마진PD-일본강제이민-대학진학-대기업취업

중학교 2학년부터 고등학교 자퇴쓰고 일본을 떠나기 전까지 약 3년간, 교과서를 제대로 읽어 본 기억은 없지만, 그래도 기본은 있던 놈이라 중학교 때까지는 못해도 중상위권 성적을 유지했었다.

그러나 청소년들의 나쁜 짓은 하면 할 수록 더 빠져들고 중독이 되기 쉬운 법. 나 또한 예외는 아니었다.

고등학교를 들어가자 ”양끼와 ‘날티’가 절정에 달한 나는 거의 학교를 안 가다 시피 했고, 방탕한 비행생활은 극에 달하며 나를 ‘쓰레기 청소년’으로 몰아갔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서도 마음 한구석에서는 ‘이게 아닌데…’ 라는 초조함이 한순간도 떠나질 않았다.

태생은 ‘쌍놈’이지만, 그 당시부터 언제나 시각적 감성과 철학적 발상을 중요시 했던 나였기에, 더 이상 그렇게 망가지는 내 자신을 보고 있을 용기가 없었다.

결국, 고등학교 2학년 1학기를 마칠 무렵 일본으로 이민을 가게 되는데…

다행히도 일본으로 도망갔던 엄마는 홀몸으로 우리 자매를 위해 성실하게 음식점을 운영하고 있었고, 나는 이윽고 그 보이지 않는 ‘사랑’을 발판으로 10대의 끝자락에서 ‘기사회생’을 할 수 있었다.

당연히 주변에 친구라곤 단 한명도 없었던 덕에, 쥐죽은 듯이 공부에만 전념할 수 있었고, 그 결과 비교적 짧은 시간에 검정고시와 일본어 능력시험은 물론 대학입시까시 무사히 통과하게 된다.

게다가 2002년에는 ‘욘사마 한류붐’과 ‘BoA의 케이팝’이 일본으로 건너온 덕분에, 꿈에 그리던 대형 엔터테인먼트 기업에 입사할 수 있었고, 그 후 약 6년 동안은 도쿄 한복판의 ‘꿀맛’을 느껴가며 ‘연봉 7천만 원’이라는 나쁘지 않은 성적으로 20대를 마무리하게 된다.

그렇게 맞닥트린 기대 부푼 승부의 터널 30대.

그러나…신의 장난인가! 아니면 쌍놈의 천성인가? 나는 또다시 의도치 않게 ‘고장난 제트코스터’에 발을 담그게 되는데…

전업 트레이더 겸 유튜버로 다시 태어나는 마진PD의 포부

마진PD-유튜버-데뷔포부

최근 10년 간의 캐리어는 내 블로그 사이트(개미FX) 게시물에서  그 흔적들을 찾아 볼수 있을 테니 굳이 언급하지는 않겠다.

예를 들면 이런 글들.

외환거래 '투자마인드' 와 죽음관
욕심버리기 ‘투자마인드’ 와 우주론적 죽음관

여기까지의 내용과 블로그 글들을 보면  나의 성향과 사상이 대략은 파악되리라 생각되는데, 독자 여러분은 어떻게 느끼실지 궁굼하다.

유튜버란, 자기자신 자체가 하나의 ‘콘텐츠’가 될 때 가장 큰 힘을 발휘하는 직업이다.

하지만 나는 그 정도의 휴먼파워를 가지고 있지는 않으므로 ‘자기소개’만이라도 스토리텔링하게 전개해 봤는데 과연 이런 내용들을 영상으로 잘 뽑아낼 수가 있을까?

과거 망한 사례가 있기에 벌써부터 조금씩 불안해 지기는 하지만…우리나라 사람들의 ‘좋아요’와 ‘구독’ 정신을 기대해 보면서, 언제나 ‘유익한 정보를 제공하는 유튜버’ 가 될 것을 약속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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