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2일, 일본이 한국을 화이트리스트(백색국가 대상국)에서 제외하는 결정을 공식 발표하면서, 대한민국 언론매체들은 매일같이 한일 무역분쟁 관련 기사를 쏟아내고 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전반에 걸쳐서 한일 양국 간의 관계를 되돌아보며 미래를 전망하는 각양각색의 동영상, 텍스트 콘텐츠들이 난무하고 있는 탓에, 자칫하면 가짜뉴스에 속아 넘어갈 판국이다.
좌파 언론과 우파 언론의 견해도 다르고, 유튜버나 블로거들의 성향도 극명히 갈리고 있어서, 현재 일본의 경제보복 행위들이 어느 정도의 파괴력을 가졌는지 제대로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오늘은, ‘국력’ 을 논할 때 가장 중요한, 경제력 (대외 순자산액 중심) 과 기술력이라는 두 가지 잣대로 한국과 일본의 국력을 객관적으로 비교해 보고, 장기적 시점에서 대한민국의 대응법을 고찰해 보도록 하겠다.
경제력으로 보는 한국과 일본의 국력
세계은행 (WB) 의 수치에 따르면 2018년 대한민국의 《1인당 국민 총소득 GNI (PPP)》 는 약 40,000달러로, 일본 (45,000달러) 과의 격차가 드디어 5천 달러 이내로 좁혀졌다. 아무리 생각해도 4만은 뻥튀기가 좀 심했다
하지만 국력 측정의 바로미터라 할 수 있는 《국내 총생산 GDP》으로 보면, 일본은 여전히 우리나라보다 3배 이상 큰 경제규모를 가지고 있는 세계 3위의 경제 대국이다.
인구 차이를 고려하면 납득이 가는 수치일 수도 있지만, 또 다른 경제 관련 데이터들로 비교하다 보니, 그 차이가 더욱 벌어지는 느낌을 받았기에 다음과 같이 소개해 본다.
「대외 순자산액」은 아직도 9배 차이
예를 들어, 금융위기 방어능력의 잣대이기도 한 ‘대외 순자산액’을 기준으로 경제력을 비교를 해보자.
작년 말 기준, 일본의 대외 순자산액은 약 3조 5천억 달러로, 주요국 가운데 28년 연속으로 1위를 차지했다. 2위 독일(약 2조 5천억 달러)보다도 압도적으로 많은 금액이다. (일본 재무성 발표)
다행히 우리나라도 2014년 순채권국으로 돌아선 이래, 순조롭게 자산 증식에 성공하면서, 약 4,130억 달러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하지만 세계 최고의 알부자인 일본과 비교하면 9배 가까이 작은 규모다.
인구나 국토, GDP, 외환보유액, 증권시장 시가총액, 세계시장 점유율 1위 품목수 등, 대부분의 영역에서 한국과 일본의 격차는 3~4배 정도라고 알고 있는 분들이 많은데, 민간부문의 대외자산 규모에서는 넘사벽의 차이가 있었던 것이다. (외환 거래량 역시 9배 정도의 차이)
대외 순자산액이란, 우리나라 거주자들의 해외에 대한 직접투자, 주식-채권 및 파생상품 투자 총액에서, 해외 거주자들이 우리나라에 투자한 돈을 뺀 금액이다. 즉, 이 수치가 플러스라는 것은 해외에 줄 돈보다 받아야 할 돈이 더 많다는 뜻이다.
반대로, 외화보유액은 중앙은행 및 외국 국립 은행 등에 예치된 정부의 자산 (대부분 채권) 으로, 달러, 유로, 엔, 파운드화 금 등으로 구성된다. 2018년 우리나라의 외화보유액은 약 4,000억 달러로 일본의 1/3 수준이다.
대외 순자산에 숨겨진 일본의 경제의 본성
일본은 이 대외순자산에서 나오는 이자와 주식 배당액 등으로 벌어들이는 수익만 해도 연간 1,700억 달러가 넘는다. 경상수지에 포함되는 ‘본원소득수지’를 보면 이 수치를 알 수 있는데, 우리나라는 이 금액이 고작 2억 달러 정도다. (2017년 기준) 일본에 비해 재테크 능력이 현저히 떨어진다는 얘기다.
즉, 일본은 무역 수출입에서는 약 440억 달러의 흑자밖에 안 되지만, 이러한 ‘돈놀이’로 빨아들이는 이익이 엄청난 덕에, 2,000억 달러에 가까운 경상수지 흑자를 올리고 있다. 기업들의 실적이 부진하더라도, 이런 형태로 흑자가 이어지는 구조이기에 툭하면 엔화 강세 현상이 나타나곤 하는데, 반대로 이 점이 일본의 약점이 될 수도 있다. 경기가 안 좋아져도 통화가치가 그다지 약해지지 않는 탓에, 환율 효과로 기업들의 수출이 호전되는 혜택을 좀처럼 누릴 수 없기 때문이다.
일본 정부가 2012년 엔화 약세를 유도하는 아베노믹스를 시도한 것도 이런 특이한 경제 구조를 개혁해보려는 노력의 일환이라고 말할 수 있다.
대기업 무역 의존도가 높은 한국의 약점
반면 우리나라는 무역 수출입에서 1,000억 달러가 넘는 흑자를 기록하지만, 관광업 등에서는 적자를 보는 탓에, 결국 700억 달러 정도의 경상수지 흑자에 만족해야 하는 실정이다.
이러한 이유로, 만약 한일 무역분쟁이 심화 돼서 두 나라의 수출이 모두 크게 꺾일 경우, 먼저 타격을 받는 쪽은 당연히 우리나라다.
일부 전문가들은, 수출 기업들의 이익이 많이 줄어들면 국내 증시에서 큰손들 (외국인 및 기관투자자) 의 자금이 유출될 가능성이 있고, 그 때문에 환율이 폭등하면서 금융위기의 악몽이 되살아날 수도 있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잘 생각해 보면, 현재 대한민국 경제기반은 97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탄탄해졌기에, 금융쇼크라고 해도 가벼운 타박상 정도로 끝날지도 모른다.
2008년 금융위기 전까지만 해도, 국내 금융 투자 시장은 외국인들의 2년 이하 단기채권 투자가 주를 이뤘으나, 이제는 글로벌 펀드와 해외 중앙은행, 연기금 기관 (5년 이상 장기물) 등, 투자자층이 다양해진 덕분에 자금유출 리스크가 예전처럼 높지 않기 때문이다.
국외 세력들의 장기물 투자 확대는 한국의 국가신용등급 상승, 대외지급능력 개선으로 이어지면서 한국 국채에 대한 수요를 증가시켰는데, 앞으로도 이러한 추세는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유럽 선진국들이 금융위기 이후 국가신용등급이 낮아지면서 우리나라가 반사 이익을 얻고 있는 부분도 크긴 하지만…)
참고로 대한민국은 위 그래프처럼 10대 재벌이 국내 총생산의 거의 절반을 차지할 정도로 대기업이 절대적인 영향력을 과시하는 경제구조로 되어있는데, 정부가 이러한 편향성을 바로잡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면, 아무리 금융시장이 안정되더라도 일본과 국력 차이를 좁히기는 쉽지 않으리라고 생각된다.
기술력으로 보는 한국과 일본의 국력
1987년 매일경제 신문은 2050년에는 한국과 일본의 기술력 격차가 ’49년’으로 벌어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당시는 22년) 지금 생각해보면 방귀가 나올법한 얘기지만, 당시 세계경제를 주름잡던 일본과 개도국 한국의 관계를 비관적으로 보면서 이에 동감하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여기에 대해서는 며칠 전에 《JTBC 뉴스룸》에서 보도한 팩트책크 내용이 도움될 것 같아 소개해 보겠다.
다음과 같은 11개 분야에서 120개의 중점과학기술을 선별해서, 현재 미국과의 격차가 얼마나 벌어져 있는지를 통해 각국의 기술력을 분석한 내용이다.
EU(유럽)은 0.7년, 일본은 1.9년 한국과 중국은 3.8년이라는 결과로, 이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일본보다 1.9년 뒤쳐져있다는 말이 된다. (전체 평균)
한국과학기술평가원이 전망한 수치라서 우리나라한테 유리한 쪽으로 평가했을 수도 있으나, 생각보다 양호한 결과에 많은 사람들이 안심했을지도 모르겠다.
기초과학 기술력의 수준 차이
위 수치만 보면, 몇 년 안에 따라잡을 수 있을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뉴스룸에서 언급되었듯이 기초과학(자연과학) 분야에 관해서는 수준 차이가 생각보다 크지는 않을까 하는 우려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일본은 과학분야에서만 21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했지만, 우리나라는 아직 단 1명도 없다는 점이 그 근거로 작용하고 있는데, 나역시 이 부분이 가장 부끄러운 점이긴 하다.
경제력은 단기간에 따라잡을 수 있을지 몰라도, 그 원천이 되는 기초과학 기술력은 고등교육 시스템부터 근본적으로 개선해야만 발전되는 영역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거꾸로 생각하면, 노벨상 수상자 없이 이 정도의 기술력을 확보한 것도 다른 나라에는 없는 대단한 능력이라고 생각할 수 있으므로, 앞으로도 이러한 벤치마크 능력을 집중적으로 키워나가는 것이 우리의 생존법일지도 모르겠다.
‘중용’의 정신으로 극복하는 한일관계
여기까지 읽어주신 분들을 위해, 나의 기본적인 사상에 대해 간단히 설명해 보겠다.
나는 ‘삼라만상’의 한쪽 면만 보고, 편향적인 판단을 내리는 행위를 좋아하지 않는다. 정치성향 역시 ‘중도’라고 말할 수 있고, 한일관계 또한 친일, 반일로 가르기보다는… ‘지일(知日) 로써 극일(克日) 을 실천해야 한다’는 주의다.
플라톤은, ‘어디에서 그치는지를 알아 거기서 머무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 최고의 지혜’라고 말했고, 아리스토텔레스는 ‘마땅한 정도를 초과하거나 미달하는 것은 악덕이며, 그 중간을 찾는 것을 참다운 덕’으로 생각했다.
우리 동양사회에도 이와 비슷한 ‘중용의 정신’이라는 개념이 있다. ‘한쪽으로 치우치거나 기대어 있지 않아 지나치거나 모자람이 없는 상태’를 뜻하는 말인데, 대부분의 외교 트러블은 이러한 ‘중용사상’을 제대로 실천하지 못해서 일어나는 경우가 많다.
어떤 사상이든, 한쪽으로 치우치다 보면, 결국 평형감각을 잃고 오염되게 되어 있다. 아베 같은 전범의 후손이 다스리는 일본이라는 나라가 아무리 싫더라도, 대안 없는 반일 감정만으로는 매사에 치밀하고 냉정한 일본을 절대로 이길 수 없다.
‘동생나라’ 일본 취급법
인종 기준으로 보자면, 이 지구 상에서 대한민국의 유일한 ‘동생나라’가 바로 일본이다.
어느 집안이든 형님이 동생보다 경제력이 세고 힘이 있을 때, 평화와 안정이 오래가는 법인데, 이는 국가 관계도 마찬가지다. 원래 대로라면, 형님인 우리가 일본보다 앞선 국력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데, 이 질서가 임진왜란 이후 뒤틀리게 되면서 동아시아에 혼란이 초래됐고, 일본의 야욕이 싹트게 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 조상님들이 사즉생의 정신으로 나라를 지켜온 덕분에, 다행히도 가까운 미래에는 형님 자리로 복귀할 수 있을 것 같다. 수천년 동안 ‘한반도’라는 명당자리를 지켜온 우리 민족이, 고작해야 백제의 후예들이 만든 ‘지진의 섬나라’한테 진다는 것은 순리적으로 말이 안 된다.
물론 굴욕적인 역사가 반복됐던 적도 있었지만, 중요한 점은 현재 대한민국이 일본보다 잘 나가고 있고 더 밝은 미래를 품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쯤 되면, 열등감과 반일정신이 아닌, 자신감과 극일정신만으로 일본을 다루어도 큰 문제는 없어 보인다.
일본에게 없는 대한민국만의 미래
이번 경제보복으로 당분간은 힘든 시기가 이어질지 모르지만, 국가부도의 심각한 사태를 이미 경험하고 극복한 우리들의 뇌리는 분명히 그에 상응하는 면역력을 지니고 있을 것이다. 일본이 아무리 발광을 해도 대한민국의 생존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다는 대범한 마음가짐을 갖고, 계속해서 국제사회와 협업해 나간다면 문제는 자연스럽게 해결되지 않겠는가.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는 모르겠으나, 남북한이 통일되고 우리의 국력이 일본을 앞서면서 동아시아의 질서가 회복되는 일이 필연적으로 일어날 테니 말이다. ‘인구는 국력’ 이란 말이 괜히 나온게 아니다.
작년 3월, 일본의 《국립사회보장 인구문제연구소》가 발표한 데이터로는, 2065년에 일본의 인구는 8,800만 명으로 감소한다고 한다. 게다가, 이중 약 40%가 65세 이상의 고령자로 예상되고 있으니, 아베가 꿈꾸는 ‘일본제국의 부활’은 누가 들어도 황당한 잠꼬대일 수밖에 없다. (미국처럼 다문화 국가로 노선 변경을 한다면 또 모를까)
국력 증대의 갈림길, 2050년 남북통일
한편, 아무리 늦어도 김정은의 풍성한 목살이 빠질 2050년쯤에는 남북한이 통일될 것으로 생각되므로, 그 후에 북한의 인구가 순조롭게 증가한다면 한일 양국의 인구가 역전되는 초유의 사건이 벌어질 것이다.
물론 그때까지 마냥 기다릴 수도 없는 일이지만, 피해자 의식에 사로잡혀 있는 한, 지금 정도의 국력 차이로는 절대로 일본과 맞짱을 뜨기는 어렵다.
많은 사람이 일본은 가해자, 한국은 피해자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역사를 좀 더 길게 보면, 신라의 후손인 우리가 가해자이고, 한반도에서 쫓겨난 백제와 가야의 후손 ‘일본’이 피해자다. 그래서 일본인들의 유전자에는 한반도를 그리워하는 마음과, 그것이 왜곡된 ‘침략주의’라는 불순한 발상이 뒤죽박죽 섞여있는 것 같다. 많은 일본 인들이 한류를 좋아했다 싫어했다 하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일지 모른다.
아무튼 우리는, 국력이 조금 더 강해질 때까지는 일본의 도발에 민감하게 반응할 필요가 전혀 없다.
지금까지도 그래 왔듯이, 참을 수 있는 괴로움은 묵묵히 참아내면서, 미래 지향적인 정책을 펼쳐나갈 수만 있다면 ‘남북통일’이라는 매우 희망찬 미래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단기적으로 봐도, 올해와 내년의 우리나라 경제성장률 전망은 일본의 4배 수준을 유지하고 있으니, 여유와 냉정함을 가지고 그들의 경제보복에 맞서도 되지 않겠는가.
만에 하나 심각한 금융위기가 오더라도, 우리의 국제적 위상이 예전과는 차원이 달라진 이상, 우리가 적극적으로 요청만 한다면 도와 줄 나라들은 얼마든지 나타날 것 이다.
정치가들도 허구한 날 편가르기 싸움만 해대지 말고, 이러한 커다란 시대의 흐름 속에서 통찰력을 발휘할 수 있는 지혜와 덕성을 배우는 데 시간을 들였으면 좋겠다.
‘억울하면 출세하라’는 말은 국가 관계도 마찬가지다. 국력이 딸리면 일단 접고 들어간 후에, 상대의 성공비결을 캐내는 영악함을 발휘해야 한다.
일본이 아무리 태클을 걸어오더라도 가볍게 피해 가면서 훈계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다리며… 한 번쯤은 우리의 ‘버릇 없는 동생’ 일본에 대해서 제대로 알아보는 시간을 갖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지피지기 백전불태 (知彼知己百戰不殆)